십자가 사랑교회

4. 교회의 퇴조 현상은 하나님께 원인이 있다.

이서우 목사

현대 교회들이 깊이 생각해야 할 점은,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기독교의 퇴조 현상은 현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천 년간 교회부흥의 역사는 세계의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든 공통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복음이 처음 전해졌을 때에는 놀랍도록 급속히 부흥 성장하다가 기독교 선진국이 되면서부터는 시대와 지역에 예외 없이 항상 쇠퇴해왔다는 점이다.
예컨대, 초대 교회 때는 그렇게 뜨겁게 부흥했던 예루살렘 교회 및 소아시아 교회들은 지금은 자취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쇠퇴했다. 기독교는 본거지를 옮기면서 대륙을 넘어 생존해 왔다. 다시 말해 겉으로는 부흥 성장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계속 쇠퇴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기독교 쇠퇴가 경제적인 안정 때문이라는 견해는 타당할까?
다시 말하지만, 기독교 쇠퇴는 현대만의 특징이 아니다. 과거 경제안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대상황 속에서도 기독교는 동일하게 쇠퇴하였다.
눈 여겨 볼 것은,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가고 기복적 신앙의 필요성이 감소하는 현대에도 이슬람교는 여전히 부흥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부터 기독교가 부흥했다가 쇠퇴하는 자리는 이슬람교가 차지해 왔다. 기독교의 발상지인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사도바울이 심혈을 기울인 소아시아 지역은 기독교 선교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이슬람 국가가 되었다. 기독교인을 이슬람교로 개종시키는 일은 있어도 이슬람교인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렇게 기독교는 날로 쇠퇴하고 반대로 이슬람교는 부흥하고 있다. 그러므로 경제적 안정은 기독교 쇠퇴의 원인이라고 단정짓기 어렵다.

그렇다면 과학화된 현대 문명의 분위기가 원인일까?
다윈의 진화론의 기초 위에서 인간도 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시대이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으며, 예수가 물 위를 걸었다는 등의 신비로운 이야기가 난무하는 성경을 믿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그러나 이슬람교를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의 내용과 교훈은 기독교보다 훨씬 더 신비적이고 아예 몽환적이다. 그런데도 이슬람교는 지금도 부흥하고 있다.

이제 문제는 신도들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의 선교 열정이 식어서 기독교가 쇠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과 달리 인간만의 문제로 돌릴 수 없는 종교이다.
교회는 주님이 직접 세우신 교회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교회이다.
그런 교회가 어떻게 쇠퇴할 수 있는가.
교회가 주님과 상관없이 쇠퇴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교회가 쇠퇴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이 세우신 성경적인 교회라면 어떤 경우에도 망할 수 없다.

기독교는 선교 초기에는 크게 부흥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차츰 쇠퇴할 수 밖에 없는 약점을 가진 종교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선교 초기에 그렇게 뜨겁게 부흥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부흥하던 기독교가 오늘날처럼 쇠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코 기복신앙의 문제거나 경제적 안정의 문제거나 성경의 신비성의 문제가 아니다. 선교의 방법이나 열정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가 주님의 지상명령(마 24:14)을 성경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는 문제이다.

당연히 기독교를 기독교 되게 하는 근본 교리에서부터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근본교리가 과연 성경적으로 모순이 없는지 점검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기독교의 보수적 전통을 완전히 무시하는 대전환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성경과 모순이 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금까지 진리로 자리매김해 왔다면 그 교리는 틀림없이 기독교의 보수적 전통 안에서 다른 요소들과 함께 긴밀히 손잡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견고한 보수적 전통이 성경을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성경만이 기준이 되는 기독교가 성경과 모순되는 교리를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었을 리가 없다.

성경과 모순되는 교리의 건재함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이미 유대교에서 지적하신 바가 있다. 누구보다도 성경적이라는 유대교였지만 예수님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단언하셨다.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마 15:6) 라고 지적하심 같이 하나님 말씀인 성경과 모순되는 보수적 전통이 유대교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대교의 잘못된 성경해석을 바로잡는 일은 예수님 공생애의 핵심 과업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께도 어려운 일이었다. 유대교의 교리는 성경적이지 않은 게 아니라 성경적인 요소를 상당히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경적인 것으로 들린다. 따라서 1500년 전통의 교리를 바로 잡기 위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분별하게 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우리는 유대교 1500년이 진리가 되지 못했음을 직시해야 한다. 기독교는 자신들이 진리로 믿는 복음의 내용을 재점검할 시기에 다다랐다. 성경적인 복음과 일치하지 않으면서 자칫 성경적 복음으로 여겨질 수 있는 변질된 복음의 문제를 검토해야 할 때이다.
설교자가 바뀌고, 설교방법이 바뀌고, 새 교회를 개척하고, 선교방법을 달리하는 등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으나 교회의 퇴조는 다가올 미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체에 하자가 있는 복음이라면 그 복음은 실패하게 될 것이다. 다른 누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실패하게 하실 것이다. 대륙과 시대를 지나면서 되풀이해 온 기독교의 쇠퇴는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 교회의 복음 정립을 통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